5권까지 누군가가 스캔본을 보내 주셔서 읽다가 9권 세트를 다 사버렸습니다. 엄마 잃은 길고양이 쿠로와 칭코가 가난한 집사 수염을 만나서 외출냥이로 살아가는 이야기지요. 처음부터 다른 귀엽기만한 고양이 만화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슬프고도 아름다운 고양이들의 이야기가 절절하게 다가오더군요.
대충 쓱쓱 그린 것 같은 그림인데도 정말 고양이를 사랑하고 오랫동안 관찰했던 사람의 그림이구나라는 느낌이 들면서도 아이들의 특색을 정말 잘 잡아낸 그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림 보다 더 마음에 든 건 책의 내용이었지요. 사람이 보는 고양이가 아니라, 단지 애교만 부리는 애완동물 고양이가 아니라,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같은 고양이의 입장에서 보고 해석하고 이야기해 나가는 책이거든요. 만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쿠로가 들려 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뭐라건, 고양이들이 어떻건 쿠로의 시각에서 쿠로의 시점으로 진행이 됩니다.
고양이천국이라는 일본에서도 길고양이들의 삶은 힘들고 고달픈가 봅니다. 길고양이가 아니어도 가난한 집사와 같이 사는 아이들도 쉬운 삶은 아니지요. 발정기 마다 새끼를 낳아 일찍 늙어버린 마다라 같은 아이들도, 중성화 수술을 겪는 아이들도 모두가 다 나름대로의 아픔을 가지고 있고... 주인에게 버려진 아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아이들, 영역에서 벗어나 고초를 겪는 아이들, 새끼를 잃는 엄마고양이, 엄마를 잃은 새끼고양이.... 일본 고양이들은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러니... 한국 고양이들의 생활은 오죽할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도 일본이라서... 고양이 때문에 행복해하는 사람들도 많고 배고픈 고양이에게 자비롭게 대하는 사람들도 많이 나옵니다. 외출냥이로 살면서도 그래도 한국보다는 안전하고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구요. 최소한 동네에 쥐약을 놔서 고양이들을 몰살시키거나 때리고 매다는 학대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고, 또 관절염에 좋다고 건강원으로 잡혀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나오지 않으니까요. (좀 딴데로 이야기가 샜군요;;)
주인공이고 화자인 쿠로. 사람들이 재수없다고 하는 검은 고양이입니다. 고양이들 사이에서도 그다지 인기는 없는 것 같지만, 인정 (묘정?)도 많고 의리도 있고 생각도 깊은 녀석입니다. 하지만, 고양이답게 호기심도 많고, 겁도 많고, 성질도 낼 줄 아는 녀석이기도 하지요.
쿠로의 여동생 칭코. 쿠로의 첫사랑 (?) 마다라, 다이스케, 토라키치, 하이이로를 비롯한 친구들, 영역의 보스 마사루, 마사루의 아들 주니어, 그 전대 보스인 영감님, 영감님을 꼭 닮은 2대, 그 밖에 수 많은 고양이들과, 그 주변의 인간들의 생활이 무척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만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좀 더 우울해지긴 합니다. 동네가 개발되면서 고양이들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도 줄어들고, 현대식 아파트와 큰 찻길이 있는 곳에서는 임신한 고양이가 잡히기도 하고 교통사고도 일어나곤 합니다. 나이든 고양이들은 세상을 떠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 고양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하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쿠로는 영역의 동료들, 영역의 새끼 고양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점점 더 느끼지요. 본인도 약해빠진 작은 고양이인 주제에 말입니다.
수퍼히어로 쿠로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습니다. 쿠로는 있는 그대로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고양이로서 고양이답게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쿠로와 칭코의 집사인 수염. 오래전에 만화가를 꿈꿨지만 지금은 알바로 근근히 먹고 사는 가난한 아저씨입니다. 고양이 캔을 삼등분해서 쿠로, 칭코와 수염이 나눠 먹는 장면은 정겹습니다. 고양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이 보여도 쿠로와 칭코를 위해 이것저것 챙기고 아이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면서도 마음으로부터 고양이들을 아끼는 모습. 고양이를 애완동물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식구로, 같은 친구로 대하는 수염은 어쩌면 고양이들이 진정으로 좋아할 만한 집사의 모범일지도 모르겠네요.
작가 스기사쿠의 홈페이지 (일본어라 해독 못함;;; 뭔가 쿠로를 닮은 아이가 주인공인 새로운 만화가 나온 듯함;;;): http://moura.jp/manga/michao/251/index.html
각 권의 표지 그림들.
012345678
'냥냥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로와 보리 (0) | 2009.12.13 |
---|---|
캣타워에서 잘까 말까 하는 중 (0) | 2009.12.06 |
치로와 보리 중성화 수술하고 왔어요 (0) | 2009.11.28 |
햇살받은 아이들... 그리고 방해받은 초져녁잠 (6) | 2009.11.24 |
사람아이들이 찍어 놓은 냥이 아이들 사진 (0) | 2009.11.03 |